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르망디 상륙작전 (문단 편집) == 서론 == ||{{{#!wiki style="margin: -6px -10px" [youtube(H29dPnog91A)]}}}|| || 유타 해변의 상륙 전개 || >Under the command of General Eisenhower, Allied naval forces supported by strong air forces began landing Allied army this morning on the northern coast of France. > >[[드와이트 D. 아이젠하워|아이젠하워]] 장군의 지휘하에, 연합군 해상 병력은 강력한 공중 지원과 함께 오늘 아침 [[연합군]] 지상 병력을 [[노르망디|프랑스 북부 해안]]에 상륙시키기 시작했습니다. >---- >1944년 6월 6일 오전 10시 [[BBC]] 홈 서비스[* 1939년부터 1967년까지 운영된 영국의 라디오 방송국.] [[나치 독일]]이 [[소련]]을 침공하여 발발한 [[독소전쟁]]이 시작된 이후 소련의 서기장인 [[이오시프 스탈린]]은 독일군의 전력을 분산시켜 소련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줄곧 서유럽에 제2전선 형성을 요구하는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. 연합군은 이에 호응해 1942년에 이미 관련 성명을 발표했으나, [[윈스턴 처칠]] [[영국 총리]]의 반대[* 해당 시기에는 미국의 도움이 있더라도 그런 거대한 작전을 감당할만한 병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 이유였다.]로 인해 미뤄졌다. 그 대신 이미 영국군이 주둔하고 있던 [[지중해]]를 통해 공세하기로 결정하였다. 이후 1943년 중순, 연합군은 [[북아프리카]]와 [[이탈리아]]의 [[시칠리아]]까지 점령하며 추축국을 지중해에서 축출하기 시작했고 같은해 9월에는 마침내 이탈리아 본토에 상륙을 하기 시작했다. 같은 시기 독소전쟁이 진행 중이던 동부전선에서는 소련이 [[스탈린그라드 전투]]에서 결정적 승리를 하고 하르코프 공방전, 쿠르스크 전투 등 승전하며 나치 독일에 대한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. 이렇게 전황이 바뀌고 동쪽전선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나치독일이 서부전선은 지킬 수 있는 병력만 남기면 된다 판단하여 여유분을 동부전선으로 옮기면서 서부전선이 약해지자 연합군은 프랑스를 되찾을 절호의 시기라며 프랑스 해안 상륙 작전을 검토하기 시작했다. 4개의 상륙 지점 후보[* 브르타뉴, 코탕탱, 파드칼레, '''노르망디''']가 뽑혔으나 최종적으로 낙점된 것은 노르망디였다. 연합군 기만술에 속은 독일군은 4개의 상륙 후보 중 파드칼레가 연합군이 상륙하기 가장 유력한 곳이라 여겨 매우 강력한 방어선을 구축해뒀으나, 혹시 모르니 노르망디에도 칼레만큼은 아니지만 유효한 방어선이 존재헀다. [[드와이트 D. 아이젠하워]]와 [[버나드 로 몽고메리]]의 지휘 하에 연합군은 오마하와 유타[* 미군 담당.], 골드와 소드[* 영국군 담당.], 주노[* 캐나다군 담당.] 해변으로 상륙하기 시작했으며 이 과정에서 독일군에 대한 수많은 폭격이 수반되었다. 작전 자체는 성공했으나 오마하 해변에서 극심한 피해가 발생했으며 때문에 이후 여러 매체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다룰 때 가장 인지도 높게 인용이 되고 있다. 노르망디 상륙은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상륙작전이었다.[* [[연합군의 시칠리아 침공|시칠리아 상륙작전]]인 허스키 작전에 동원된 사단이 2개 더 많긴 하였으나, 연합군의 해군 및 공군의 상당수가 이 작전에 참가했고, 연합군의 서부전선 주공은 이날 노르망디에 상륙한 군인들이었다. 존 키건에 따르면 [[이탈리아 전역]] 등이 사실상 이 서부전선을 보조하기 위한 조공이었다. 간단히 말하자면 훗날 서부전선을 이끌 군인들을 이 해안에 다 투입했다.] 약 16만명의 병력이 작전 당일 영국 해협을 건넜고 6,939대의 함정이 동원되었다. 이 전투에서의 승리는 나치 독일이 점령하고 있던 서유럽 해방의 첫 발걸음이 되었으며, 나아가 이후 서부 전선에서의 연합군 승리와 나치 독일의 최종적인 패망에 크게 기여한 전투로 평가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